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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역사

제목

강화 마니산 사고[摩尼山史庫]

작성자
박정자
작성일
2018.10.08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53
내용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덕포리 1335번지

사고 - 조선시대 국가의 주요 역사 기록물을 보관, 관리하던 창고.  


    본래 강화부(江華府)내 봉선전(奉先殿) 서쪽에 있다가 1606년(선조 39)에 덕포리의 위치로 옮겨 신설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실록의 재 인쇄가 시작된 1603년~1606년까지는 강화부내 사고에 두었다. 이 후 새로 재 인쇄된 실록 4질과 유일본으로 남은 전주사고본 한 질 등 도합 5질본(五秩本)을 나눠 보관하기 위해 5사고(五史庫) 설치가 추진되면서 마니산사고도 설치되었다.


   강화부내에 있던 사고를 마니산 기슭인 덕포리로 옮긴 시기는 1606년이거나 그 직후일 것으로 보인다. 마니산사고의 건물은 전후의 어려웠던 재정 상황으로 보아 새로 지었다기보다는 기존 건물을 이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마니산사고를 신축했다는 기록이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니산의 재궁(齋宮)이 낮은 곳에 위치해 있어 옮길 곳을 찾아보도록 명했던 사실 등으로 볼 때, 덕포리 서재곡(書齋谷)에 사고로 쓰일 만한 재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내려오던 마니산사고도 1653년(효종 4) 11월 사각(史閣)의 실화 사건으로 많은 서적과 서궤를 소실하게 되었다. 이에 정족산성(鼎足山城) 내에 사고를 새로 짓고 남은 실록과 서책들을 옮겨 보관하여 그 기능이 정족산사고로 넘어가게 되었다. 지금도 마니산사고지로 추정되는 덕포리 서재곡 재궁지에는 돌담이 남아 있으며, 초석으로 보이는 돌들도 밭에 남아 있다.

(참고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마니산 사고 현장답사를 하려면 옛 화도초교 마니산분교 자리의 “한국강화문화예술원”에서부터 시작해야한다. 강화군 화도면 덕포리 1335번지에는 사고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동네가 “서재골”이라 전해내려오고 있기에 사고가 있었음을 추측 할 뿐이었다. (2018년 5월 답사)



      마니산 사고에 보관하던 실록과 서책들을 옮겨간 정족산 사고 장사각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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