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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역사

제목

강화 가릉

작성자
박정자
작성일
2018.09.10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90
내용

지정번호 : 사적 제370호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 산12-2

1. 문화재청 자료

     고려 원종(재위 1259∼1274)의 왕비 순경태후의 무덤이다. 순경태후는 장익공 김약선의 딸로서 고종 22년(1235) 원종이 태자가 되자 태자비인 경목현비가 되었으며, 다음해에 충렬왕을 낳았다. 지금의 자리에는 고종 31년(1244)경 사망한 뒤 모신 것으로 짐작한다. 고려 원종 3년(1262) 정순왕후로 추대되고 충렬왕이 즉위(1274)하여 순경태후로 높여졌다.


     2004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 조사 사업을 시행한 이후, 현재의 모습으로 재정비되었다. 사적으로 지정될 당시의 문화재명은 嘉陵(1992년 3월 10일 지정)이었는데, 2011년 7월 28일 고시에 따라 江華 嘉陵으로 변경되었다.


2.강화군 홈페이지 문화재/역사

    가릉은 강화에 있는 왕릉과는 달리 지상식 석실 구조를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석실의 전면에는 유리벽을 설치하여 내부를 볼 수 있도록 되어있다. 일반적으로 봉분 뒤에는 반달 모양으로 두둑하게 토성(土城)을 둘러쌓거나 돌담을 쌓은 곡장이 있으나 가릉에는 사성(莎城), 곡장(曲墻)이 없이 약간 경사진 평지에 봉분을 쌓아 올린 형태이다. 묘역은 3단의 장대석단을 설치한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 왕릉의 형태를 갖추었음을 알 수 있다. 봉분이 붕괴되고 석조물은 파괴된 채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74년 보수하였고, 2004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한 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봉분 주변에는 현재 한 쌍의 석수가 있고 봉분 앞에는 석인상 한 쌍이 남아 있을 뿐 석물들이 파괴 또는 유실되어 당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다. [참고문헌] 국립문화재연구소,

                                                                     『江華 高麗王陵-嘉陵·坤陵·陵內里石室墳』

3. 新編 江華史 增便 中篇

     가릉의 남서쪽은 원래 바다와 접하는 가릉포(嘉陵浦)가 위치해 있어 진강산에서 마니산을 바라보는 강가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가릉포는 마니산과 진강산 사이에서 오늘날 가릉 방면에 있었고, 20여척의 큰 제방을 가릉포제라 하였다. 따라서 가릉은 진강산 남방에서 남서로 이어 나오는 완경사의 동쪽에 위치해 있다. 당시 가릉의 정면은 남으로부터 동으로 15도 치우쳐 있으며, 간단히 돌을 늘어놓아 능역을 만들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능의 높이는 5척 5촌, 지름은 19척 5촌으로 능의 봉분 위치는 심하게 옮겨졌고, 석난간은 석주 6개, 동자석주 6개의 12각형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이는 남은 석재가 있었다. 석수 2구는 능의 봉토 후방에 매몰 되어 겨우 두부를 노출하고 있었는데, 안면이 방형에 가깝고 심하게 우러러보는 형이었다.


    이 능은 1906년경에 도굴되었다고 하며, 전하는 말에 의하면 능에는 사방을 석축 한 광(壙)이 있고, 광 벽에 연하여 석조의 울타리[柵]가 있었으며, 유물을 늘어놓고 중앙에 석곽을 안치했다고 하는데 확인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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