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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역사

제목

강화 석수문(유형문화재 제30호)

작성자
박정자
작성일
2018.08.15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97
내용

    강화 석수문은 강화읍을 통과하여 성밖으로 나갈때 지나가는 서문 좌측에 있다.  


      강화읍의 중심부를 흐르는 동락천(東洛川) 위에 설치한 강화산성의 수문 두 개 가운데 하나 상수문(上水門)이다. 이 수문은 강화산성의 내성에 연결되어 강화읍을 통하여 흐르는 동락천을 가로지르는 수문으로서 조선 숙종37년에 축조되었다. 3개의 무지개 모양을 한 홍예문으로 재질은 화강암이며 길이 18.2m에, 높이 2.7m 폭 4.7m이고 홍예의 높이는 1.7m,, 폭은 3m이다.

 

    1910년까지 갑곶리 동락천 입구의 다리로 사용하다가 1972년 하수문(下水門) 자리로 옮겼던 것을 1993년 동락천 복개공사로 원래의 상수문 자리로 다시 옮겨 복원하였다. 강화산성 서문 첨화루(瞻華樓)가 길 건너 있으며 하수문은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시대의 강화내성은 동서남북문과 4개의 암문, 2개의 수문·남장대·북장대가 있었다. 현재 서문[瞻華樓]·남문[晏波樓]·북문[鎭松樓]은 복원되어 있고, 나중에 동문[望漢樓]은 강화군청에서 부지를 구입하여 복원 하였다. 4개의 암문 중에 현존하고 있는 것은 소남문뿐이다. 수문은 상수문만이 복원되어 강화석수문으로 불리고 있다


    지금 강화읍 중심을 흐르는 동락천은 4차선으로 복개되어 48국도가 통과하며 계속 동쪽으로 흐르는 동락천은 강화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들어간다. 강화지역은 관개용수원으로 삼을 만한 큰 하천이 없었다. 다만 소하천을 이용한 몇몇곳이 있는데  동락천을 용수원으로 하는 조산평이 그중 하나이다.  조산평을 지금은 고시기 벌판으로 부르는데 강화대교를 넘어 강화읍으로 들어올때 왼쪽 벌판이다. "고시기"는 고씨 집성촌이어서 붙였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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