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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역사

제목

강화 덕진진(사적 제226호), 남장포대 그리고 석호(潟湖)

작성자
박정자
작성일
2018.08.14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147
내용

    덕진진은 조선시대 강화해협을 지키는 요충지로 첨사가 있어 수영에 예속하였으나 1677년 숙종 때에 유수 허질이 만호로 올리고 진의 이름을 덕진이라 했다. 덕진돈, 남장포대 등이 모두 덕진진에 소속되어 있었다. 병인양요 때(1866)는 양헌수 장군의 부대가 밤을 틈타 이 진을 통하여 정족산성에 들어가 프랑스 군대를 격파했다.


    덕진진의 성문인 공조루(拱潮樓)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만 남아 있었다. 1976년 성곽과 돈대를 고치고 덕진진의 문루를 다시 세웠으며 남장포대와 당시의 대포를 복원해 설치하였다. 문루의 현판은 “바다를 제어한다”는 뜻의 ‘공조루控潮樓’라고 쓰여있다.


    옛적 덕진진은 배치 인원은 만호 1명 군관26명 사병 100명 돈군 12명 군량미 115석, 콩 26석, 첨향미 103석, 간장 5독, 진선 2척, 군기와 군용품 약간이었다. 원래 덕포진이 강화에 있었는데 1666년(현종 7)에 통진(지금 김포시 대곶면)으로 옮겼고 그 자리에 덕진진이 설치됐다. 덕진진은 손돌목돈대와 덕진돈대를 관할했다.


* 남장포대


   강화의 포대는 문헌기록에 의하면 황산포대(대황산도, 6문), 진남포대(초지진 남쪽, 12문), 남장포대(광성보와 덕진진 사이, 10문), 오두정포대(남장포대 북쪽, 6문), 사망금포대(오두정북쪽, 6문), 용진포대(용진진 남쪽, 8문), 갑곶포대(8문), 인화성포대(6문) 등 8포대이다.


   1871년(고종 8년)에 설치한 남장포대와 덕진포대가 덕진진에 소속되었다. 이 덕진진의 건물과 돈대, 포대는 모두 1871년 신미양요 때 파괴되어 허물어졌는데, 1976년에 수리하여 복원된 것이다. 당시에는 포좌 15문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7문이 전시되어 있다. 자연적인 지형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해상에서는 적에게 노출되지 않는 반월형의 천연요새를 이루고 있다.


[강화해설사 팁] “강화에도 석호(潟湖)가 있다."

 

  

    남장포대 끝에는 밀물, 썰물 때 바닷물이 드나드는 길이 있다. 밀물 때 들어온 바닷물이 모래 턱에 막혀 썰물에 나가지 못하여 연못에 남게 되는데 이런 연못이나 호수를 석호라 한다. 밀물 때를 맞추어 관찰해 보면 바닷물이 연못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칠게, 방게 등이 먹이활동을 하는 것도 볼 수 있다.


    석호란 사주(沙柱 모래턱)와 같은 작은 장애물에 의해 바다로부터 분리되어 형성된 연못이나 호수를 말 한다. 하천의 유입으로 점차 염분이 적어지고, 주변의 식물에 의하여 소택지(沼澤地)화 되어 차츰 육지화 되는 경우가 많다. 강릉 해안 경포, 청초호, 화진포 등은 모두 이에 속한다. 석호는 수심이 얕고 바다와는 모래로 격리된 데 불과하므로, 지하를 통해서 해수가 섞여드는 일이 많아 담수호에 비해 염분이 높기 때문에 플랑크톤이 풍부하다.

 (참고 : 지구과학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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