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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역사

제목

강화 외성 (사적 제458호)

작성자
박정자
작성일
2018.08.14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86
내용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적북돈으로 부터 선원면, 불은면, 길상면 초지진까지 강화도 동해안 일대에 쌓은 성곽이며, 지정 면적은 25만5,544.9㎡이다. 고려가 강화로 천도한 1237년고려(고종 24)에 강화 외성의 축조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 외성은 1259년(고종 46)에 몽골의 요구의 의해서 모두 헐리게 되었다. 처음 외성은 토성으로 쌓았고 성곽에는 6개의 문루 조해루(朝海樓 연미정)· 복파루,·진해루 (월곶진2곳) ·참경루(용진진)· 공조루(광성보)· 안해루(덕진진)와 암문 6개, 수문 17개를 설치했다.


    조선후기에 정묘·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외성의 전략적 의미가 다시 부상되었다. 강화는 집권자들에 의해서 유사시 천도를 가상한 보장처로서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에 내륙으로부터 강화를 침략하는 외적의 방어를 위한 관방시설이 필요하였다. 1차 관방시설이 김포의 문수산성이었고, 2차 관방시설이 바로 염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강화외성이었다. 1691년(숙종 17)에는 외성 축조가 시작되었는데, 옥포나루(제승돈 근처)에서부터 초지나루에 이르렀던 당시 외성의 길이는 43리 200보였다. 그 후 외성은 1718년(숙종 44)에 월곶돈에서 부터 휴암돈까지 연장·증축되었다.

 

화도수문개축기사비(花島水門改築記事碑)


   순조3년(1803)에 세워진 비석으로 화도수문의 개축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조복양(1609~1671)이 석문을 설치하여 조수를 막았고, 영조 대에 외성을 축조하면서 다시 수문을 쌓았다는 기사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강화도 간척사업과 강화외성의 축조과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비석 설명문 내용)



사진설명 :   화도수문 개축기사 비

   강화대교를 건너 좌회전하여 해안순환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용진진을 지나고 언덕을 넘어 화도(花島) 돈대

   앞 과속단속 카메라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다리를 건너 주차장에 차를 멈추어 서면 수문과 비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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