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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역사

제목

세계문화유산 "강화 부근리 고인돌"

작성자
박정자
작성일
2018.08.14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153
내용

     고인돌은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 고대사회의 대표적인 묘제의 하나로서 한반도 서쪽 지역에 분포되고 있다. 청동기시대 고인돌은 지석묘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고임돌로 큰 덮개돌을 받쳤다하여 붙인 이름이다. 영어로 Dolmen, 한자로 석붕(石棚)이라 한다. 전국 각지에는 2만9천여기 이상의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으며 강화에는 160여기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제일 많은 고인돌을 가진 나라다.


    고인돌은 정치적 단계로 발전한 집단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알려 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따라서 강화의 고인돌 분포는 인근 지역보다 우세한 세력이 존재하였던 것을 짐작하게 한다. 지금까지 강화에서 확인된 고인돌은 양사면 교산리 고인돌군, 하점면 부근리 고인돌군, 하점면 삼거리 고인돌군, 내가면 고천리 고인돌군, 내가면 오상리 고인돌군 등의 지역군으로 나뉘어 밀집 분포되어 있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고인돌은 구성 형태에 따라 분류하는데 북방식(탁자식) 고인돌은 무덤방이 지면 위에 있는 굄돌로 덮개돌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며 남방식 고인돌은 무덤방을 지면보다 낮은 지하에 두고 그곳에 고임돌을 세워 무덤방을 만들고, 지면과 거의 비슷하거나 약간 높게 덮개돌을 놓은 형식이다. 또 이처럼 지하에 무덤방을 만들되 고임돌인 지석이 없이 덮개돌인 개석만을 올려놓은 형식을 개석식 또는 무지석식 고인돌이라고 한다. 남한지역에 주로 분포되어 있는 약 2만기 이상의 고인돌은 한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낙동강 유역 특히 전라도 지방에 집중 분포되고 있다.


2. 세계 문화유산 “강화 부근리 고인돌” (사적 제137호)


   “강화 부근리 고인돌”은 우리나라 대표 고인돌로 북방식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덮개돌은 화강암으로 되어 있고 무게는 약 108톤으로 추정되며, 이러한 석재를 옮겨 축조하기 위해서는 최소 1,082명의 인력이 동원되어야 가능한 만큼 선사 시대에 강화도를 매우 막강한 힘으로 지배했던 부족장의 무덤이라 추정할 수 있다. 주변의 고인돌군과 함께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강화 부근리 고인돌”은 강화전쟁사박물관이 앞에 자리 잡고 있어 한반도와 운명을 함께해온 강화의 역사와 유물을 함께 볼 수 있다.


   “강화 부근리 고인돌”의 무거운 덮개돌은 실험에 의해 추측한 다면 1,080여명의 청장년이 동원되었다는데 전체 주민은 1,000호 이상 거주하였다고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이 같은 족장의 지배를 받았다면 국가로 발전하는 정치세력이 등장한 시대라 짐작하게 한다.  그렇다면 수천 명의 주민들이 어떻게 식량을  구했을까?   청동기 시대 고인돌 주변
자연환경은 어떠했을까?  
 
힌트:  강화에 있는 넓은 논과 평야는 간척사업 이전 바다였고 갯벌이었다.

☜  참고서적  :  “5천년 강화”
 

 글쓴이 :  마리실버힐 원장 (강화문화해설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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